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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7 11:13:26 조회 : 3929         
농촌 다문화 가정을 우리 품으로 이름 : 한여농
다문화 가정 2세를 보듬자
다른 생김새·어눌한 말투…색안경 끼고 보지 마세요
 
 
충북 옥천군 삼양초등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필리핀 여행’ 수업을 듣고 있는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미식축구 선수 하인스 워드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삶은 닮았다. 혼혈아인 것은 물론 차별과 소외감, 설움을 딛고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단일민족 사상이 깊게 뿌리박힌 한국사회에서 다문화가정 2세가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색안경을 쓴 시선에 열악한 농촌의 교육 환경은 이들을 두 번 울게 한다. 이제 이들은 우리가 보듬어야 할 이웃이다. 따뜻한 격려와 관심만이 제2의 하인스워드와 오바마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한국어 서툰 상태서
자녀 양육 시작
아이들 언어발달 지연
학습부진으로 이어져
국가적 차원
조기 예방치료 필수



▲도시보다 더 열악한 농촌 환경
=“내가 한글만 더 잘 배웠으면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 텐데….”

농촌의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열악한 농촌 교육 여건과 부모로부터 말을 제때 배울 수 없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결혼 4년차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B모(24)씨는 유일한 한국어 선생님이 TV다. 한국어 교재는 남편이 1년 전 던져준 한글 사전이 전부다. 그나마 과수원, 벼농사, 축산 등 사시사철 쉴 새 없는 농사일에 한글을 배울 시간조차 없었다. 특히 한글교실을 가고 싶어도 나쁜 물 들 수도 있다며 못나가게 하는 남편 때문에 엄두도 못 낸다.

더욱이 3년 전 얻은 딸아이마저 말을 제대로 못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일상이 너무 바빠 돌볼 겨를도 없다. 유독 또래에 비해 발음이 어눌하고 말이 느린 딸아이를 일찍 유치원에 보내려는 이유도 말을 빨리 배우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한 달에 10만원 이상을 교육비로 들여야 하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홍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관계자는 “농촌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적고, 이로 인해 2세들까지 말을 제대로 못해 학습 부진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2세들의 높은 학업 중도 포기율=부모로부터 대물림되는 언어 발달 부진과 학습부진의 악순환은 다문화 2세들을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내몰고 있다. 농촌에는 옆집의 숟가락 숫자까지 알 정도로 가정사들이 속속 이웃에게 노출돼 있어 2세들의 상처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취학연령대 자녀 2만4867명 가운데 6089명(24.5%)이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등학생 연령(만 16~18세)에 해당하는 2504명 중 교육을 받지 않는 아이들은 1743명(69.6%)으로 70%에 육박했다. 중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만 13~15세는 3672명 중 1459명(39.7%)이, 초등학생에 해당하는 만 7~12세는 1만8691명 중 2887명(15.4%)이 각각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일반가정 자녀들에 비해 중학과정은 9.9배, 고등학교는 8배 높은 수치다.

정선아 숙명여대 아동복지전공 교수는 “현재 다문화가정 2세들의 상당수가 초교 저학년이지만 몇 년 후 이들이 초교 고학년, 중고교에 진학하게 되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며 “다문화가정 자녀에게 실질적인 교육적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정확한 실태조사와 함께 획기적인 정책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선입견 보다는 따뜻한 격려를=“너는 눈이 참 크구나.” 한국사회에서 눈이 크다는 말은 칭찬에 가깝다. 하지만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눈이 크다는 말을 듣는 것을 싫어한다. 다른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적인 편견이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는 가장 큰 상처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이라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쳐다보는 사회 분위기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거나 말투가 어눌하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미금 거창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이주여성들이 아직 한국어 구사능력이 서툰 상태에서 자녀양육을 하는 경우가 많아 2세 교육이 약간 뒤처지는 건 사실”이라며 “힘들어하고 소외받을 것이라는 지나친 선입견보다는 따뜻한 격려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언어치료 프로그램을 운영중인 신혜정 광주여대 언어치료센터 교수도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언어발달 지연과 학습부진은 부모들의 이중 언어 사용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도 함께 작용한다”며 “이는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으로,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언어 발달이 느리다’는 잘못된 선입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유아기에 언어 발달 및 발음장애를 예방, 치료하는 게 시급하다는 목소리다. 다문화가정 2세들의 그늘은 한국말이 서툰 엄마로부터 정확하고 충분한 언어습득 기회를 갖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전문적인 언어 치료를 받게 되면 가시적인 성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의사소통 태도에 자신감이 붙고 말을 하고자하는 욕구가 높아진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기 예방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문화 이해교육 프로그램 시행 옥천 삼양초등학교
"오늘은 베트남서 온 우리엄마가 선생님"


충북 옥천군 삼양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설진우 학생은 학교에서 일명 ‘인기 짱’이다. 베트남에서 온 엄마 황티탄상 씨가 한 달에 한 차례 씩 학생들을 상대로 ‘베트남 여행’을 보내주기 때문이다. 물론 비행기를 타고 가 베트남을 구경하는 ‘진짜’ 베트남 여행은 아니다. 시청각 자료를 활용해 베트남의 인사말, 음식문화, 전통의상, 전통놀이, 동요익히기 등을 가르쳐 주는 간접 여행이다.

황영옥 다문화가정 담당 선생님은 “재학생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상대로 베트남 수업을 하고 난 뒤부터 자녀들이 학교에서 인기가 많아지고 자신감도 붙었다”고 말했다.

삼양초등학교는 충청북도교육청 지정 다문화이해교육 정책연구학교의 일환으로 연중 4회에 걸쳐 베트남, 필리핀, 일본, 중국 등 다문화사회에 대한 이해교육 프로그램을 시행중이다.

지난 10일 충북 옥천군 삼양초등학교 5학년 3반 교실. 베트남 전통 의상을 입은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자 학생들은 일제히 ‘신 짜오(안녕하세요)!’라고 외친다. 소개를 마친 선생님들은 베트남 지도를 보여주며 닮은 꼴이 무엇인지 묻자 학생들은 “뱀, 호랑이, 용이요~”라고 여기저기서 대답한다. 선생님은 “다 맞아요. 영어 알파벳 J도 닮았어요”라며 맞장구친다.

같은 시간 3학년 2반 교실도 필리핀 여행이 한창이다. 주요 관광지인 계단식 논, 보라카이, 초콜렛 언덕 등과 필리핀 사람들이 즐겨 먹는 돼지 바비큐와 필리핀 잡채(빤싯), 아침식사 등을 보여주니 아이들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몇몇은 입맛을 다신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살라맛포~”라며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고수지(10) 학생은 “필리핀 선생님이 직접 와서 생소한 필리핀 말과 동요도 가르쳐 줘서 매우 즐거웠다”며 “필리핀 혼혈 친구를 만나면 먼저 말도 걸고 친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삼양초등학교는 이같은 다문화사회 이해 교육 이외에도 아이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다양한 다문화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연 2회에 걸쳐 몽골,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6개국에 대한 다문화 어울림 한마당을 개최해 문화 교류를 하고 있는 것은 물론 다문화가정과 일반 가정이 함께 하는 1박2일 캠프를 진행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위해 ‘찾아가는 다문화가정’ 사업도 진행중이다. 담임선생님이 1주일에 한 번 씩 집에 가서 보충학습을 해주는 것은 물론 방학기간 중에는 한국교원대학 학생 봉사자들이 1~2주 동안 멘토 역할도 해줄 예정이다.

다문화 친구들이 함께 하는 동아리 활동도 인기다. 고학년 20명으로 구성된 동아리 ‘너나들이’는 학기중에는 상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방학에는 직접 UCC도 제작할 예정이어서 학생들은 벌써부터 들뜬 분위기다.

황 선생님은 “학부모들이 전에는 학교 행사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다문화 행사에 참여하면서부터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며 “학생들도 전에는 엄마가 외국인인 것을 숨기는 분위기였다면 이제는 친구들이 먼저 알려주고 함께 어울리려 한다”고 다문화 이해 교육 프로그램이 가져온 변화를 자랑했다.

○미니인터뷰/정정우 삼양초교 교장
"어른들 왜곡된 시각, 아이들이 바꾸죠"


“외국인과 그 2세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왜곡된 시각을 바꾸기는 힘듭니다. 아이들을 통해 어른들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정정우 삼양초등학교 교장은 함께 하는 다문화사회를 만들기 위한 해법을 ‘아이들 교육’에서 찾는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아이들에게 다문화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를 심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장은 “아이들이 색안경을 끼고 다문화 친구들과 장벽을 쌓고 어울리려하지 않는다면 향후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것”이라며 “이들이 한국인 가정 아이들과 다르고 느리더라도 똑같은 친구라는 인식을 시켜주며 용기를 북돋아주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 교장은 “아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리만 만들어 주면 다른 생김새나 말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며 “아이들에게 다문화 2세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다양한 다문화가정 이해교육을 실시한다면 아이도 변하고 어른까지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흰색 도화지에 가까운 아이들의 흡수력은 대단했다. ‘베트남 여행’, ‘필리핀 여행’을 다녀온 아이들이 집에 와서 부모님한테 학교에서 배운 베트남 인사나 문화, 옷 등을 알려주기 바쁘다. 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들 국가 동요를 흥얼거린다.

정 교장은 “예전에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따돌림과 놀림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관심의 대상이 됐다”며 “아이를 통해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다문화가정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문화이해교육 연구 자료를 분석, 일반화된 자료를 만들어 각 학교에 보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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